위대한 실천가, 전명운·장인환 -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다
1908년 3월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자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현장에서 방아쇠를 당긴 이는 두 명의 조선 청년, 전명운과 장인환이었다. 두 사람은 사건 이전 서로를 알지 못했으나, 일본의 을사늑약 체결을 정당화하고 한국 식민지 지배를 국제사회에 미화하던 스티븐스의 왜곡된 언행에 분노하며 각자의 결단으로 의거에 나섰다.
전명운의 첫 발은 불발되었고 몸싸움이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장인환의 총성이 울렸다. 사건 직후 두 청년은 각각 살인미수와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미주 한인 사회와 공립협회는 이를 단순한 사건이 아닌 조국 독립을 위한 의로운 투쟁으로 인식하고 구명 운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전명운은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장인환은 ‘애국적 동기에 의한 2급 살인’ 판결로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범적인 복역과 한인 사회의 지속적인 석방 운동으로 10년 만에 출소하였다. 이들의 의거는 미주 한인 사회를 하나로 결집시키며 한국 독립운동사 최초의 해외 의열 투쟁으로 기록되었다. 나아가 이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흐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전명운은 법정에서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전쟁 승리 이후에는 외교권 박탈과 수탈, 폭압으로 한국인에게 고통을 안겼음을 지적하며, 스티븐스의 친일 옹호 활동에 대한 항거로 의거를 결행했음을 당당히 밝혔다. 공립협회 또한 “한국 독립은 오늘이고, 한국의 자유도 오늘”이라 외치며 재판을 독립운동의 연장선으로 인식하였다.
10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해외 일부 교과서와 출판물에서는 일제강점기의 본질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202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과서의 왜곡 서술 역시 한인 사회의 노력으로 시정되었으나, 여전히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와 각종 출판물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왜곡은 반복되고 있다.
이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미주 한국학교 교육 현장에서 올바른 한국사를 가르치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정확히 알리는 노력은, 곧 100여 년 전 이국땅에서 정의를 외쳤던 전명운과 장인환의 뜻을 이어가는 길일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실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