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아름다운 우리말] 스러움의 미학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스럽'을 발음하다보면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건 아마도 시옷과 리을의 발음에서 느껴지는 기운일 수 있다. 시옷과 리을을 들으면 어떤 말이 생각나는가? 금방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사랑이다. '서로'는 어떤가? 나와 너의 사이를 메워주는 '서로'라는 단어는 늘 든든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서도도 시옷과 리을이 만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의 나열을 보라. 잠이 '사르르' 오면 기분이 좋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이런 단어들을 보면 왠지 '설레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스럽'이 들어가는 단어 중에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어휘들이 많다.

'스럽'은 어떤 느낌이 가득하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대표적인 단어로는 '사랑스럽다'가 있다. 사랑스럽다는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사랑의 원 의미가 '생각하다'임에 미루어 볼 때, 자꾸 보고 싶고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정성스럽다'는 말에는 정성을 다한 느낌이 담뿍 난다는 의미다. '어쩜 저리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믿음직스럽다'라는 말은 '믿다'와 '음직' 그리고 '스럽'이 합쳐졌다. '음직'은 그럴 만하다는 의미를 더한다. 따라서 믿을 만한 느낌이 들 때 이 표현을 쓴다. 듬직하다.

'자랑스럽다'도 누굴 만나든지 자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다. 그 느낌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자랑은 어원적으로 보면 자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려면 낯이 뜨겁기도 하다.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아무래도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은 '자식'이 아닐까 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낫다는 말에는 괜히 기분이 좋다. 자식을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나쁘면 이상한 거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꺼내어 보여준다. 은근한 척하지만 때로는 노골적으로 아이 자랑을 밝게 하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스럽'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 그 단어가 바로 '죄스럽다'이다. 죄스러운 마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나의 행복이 미안할 때 생긴다. 내 행복에는 누군가의 눈물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내 행복은 내 무관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 죄스럽다는 이런 우리의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죄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무수히 짓는다. 그래서 죄스러운 마음은 더욱 귀하다. 죄스러운 일이 많은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죄스러움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일 수 있다. 죄스러운 마음이 들 때 어떻게 죄를 씻을까도 고민해야 한다.

'스럽'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바란다. 시옷과 리을의 발음도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러는 동안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믿음직스러운 사람도 많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일도 많으면 좋겠다. 죄스러운 마음도 많아져서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죄도 씻겨나갈 수 있다.

우리는 문법 공부를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문법 공부가 재미없다면 그건 아마도 가르치는 방법이 잘못 되었거나, 교재가 재미없어서일 수도 있다. 문법에도 우리네 삶이 그대로 들어있다. 문법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 느낌 등이 더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 언어는 우리의 옛 선조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잘 들으면 우리는 몇 천 년의 역사를 말 속에서 배울 수 있다. 오늘 '스러움'이라는 문법의 미학을 들려주고 싶었다.

[출처:뉴욕중앙일보 2016.08.18]